잊을만 하면 나오는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흑인의 죽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래서 미국 사회에 뿌리깊게 남아있는 흑인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 린칭(1877~1950)
백인들이 흑인들을 교육한다는 명목하에 공개 처형을 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은 남북전쟁 이후 남부의 백인들이 흑인과 동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공포 전략으로 사용했습니다.
흑인에게만 적용되는 규범을 만들어서 이를 어기는 사람의 집에 몰래 습격하여 납치를 하고,
끔찍한 고문과 더 나아가서는 교수형에 처하기도 하는 등 법 밖의 일들을 행했다고 합니다.
놀라운 점은 경찰도 린칭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말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그대로 행해졌다고 하죠.
이러한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가 남아있다고 합니다.
2. 시카고 사태(1919)
1차 세계대전으로 미군이 참전을 하면서 흑인들은 군수공장에서 군수물자를 만들며 노동을 했고,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백인들이 돌아왔을 때는 일자리를 흑인들에게 빼앗겨 없었다고 합니다.
거기에 세계대전 중에 일어난 흑인 인구의 대이동으로 미국 전역으로 흑인들의 가구수가 증가하면서,
이것이 갈등요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흑인아이가 백인들만 놀 수 있던 호수에서 놀다가 돌에 맞아죽게 됩니다.
이를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백인들은 경찰신고에 대한 보복까지 하면서,
결국 무장 폭력 사태가 시작됩니다.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똑같이 무장을 하고 보복을 했지만, 경찰들은 흑인들만 대다수 잡아가고 백인들은 잡지않았습니다.
3. 슬레이브 패트롤(19세기)
민간인 민병대로 백인들이 마을을 돌며 흑인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반란을 꾀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경찰이 많지 않았던 때라서 민병대의 힘이 대단했다고 하는데요.
대한민국의 국방의 의무처럼 백인이라면 누구나 해야하는 의무처럼 여겼다고 합니다.
이 문화에서 차별적이었던 것은 백인은 나이가 많은 흑인이라도 무조건 boy라고 낮춰불렀고,
흑인인 나이가 어린 백인이라도 무조건 sir이라고 높여불렀다고 합니다.
이 문화는 노예제도가 사라진 후에도 오랜 시간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흑인들이 일으키는 국가적 재난과 테러행위들이 인종차별이라는 이유로 정당화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법률적인 개선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각종 이슈·논란 지식백과 > 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쿠시마 10년만에 또 강진! 120여명 부상! 그 날의 악몽이 또.. (0) | 2021.02.14 |
---|---|
'차이유, 짭이유'라 불리는 'wenhoney'는 '딥페이크(deepfake)'? (0) | 2021.02.03 |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남아있는 '태형' 동성애, 성범죄 처벌로 사용 (0) | 2021.01.30 |
'노출시 1시간 내 사망' 가능한 후쿠시마 원전, 여전히 초고농도 방사능으로 작업 불가 (0) | 2021.01.28 |
일본 가출 여중생 성적확대 사건의 범인 '사카우에 히로아키' 재판결과 (0) | 2021.01.11 |
댓글